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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의 정치 관련 성경적 세계관

뉴스는 어떠한 정보를 극대화시켜 알리는 데 목적이 있기에, 보통 뉴스가 다루는 이슈와 사건들은 확대되어 전달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대한민국 정치나 미국 정치를 봐도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정치인들의 갈등, 이들의 정책에 대한 비판 여론 등 다소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콘텐츠들이 많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부정적이라기보다는, 민주주의의 본질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가 어느 정도 보장된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정치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정치에 대해 전문적으로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초·중·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일반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보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이슈들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다뤄야 할지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첫째, 예수님께서는 정치적 세력을 사용해서 세상을 바꾸려 하지 않으셨다. 분명한 점은, 그리스도인의 목적이 정치적인 색을 띠는 데 집중되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사회에 정치인들 중 그리스도인이 많고, 법조계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정치에 직접 관여할 필요는 없다. 예수님조차도 따르던 자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려 할 때 그 권력을 붙잡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 시대에 정치적 권력을 휘두르던 종교 지도자들을 규탄하셨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인 이슈를 그리스도인의 세계관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된다는 말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세금 문제에 대해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세상의 지도자들과 정치 구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분명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 민주당과 공화당의 치열한 갈등과 상반된 정책들이 자주 보인다. 이러한 것들을 성경적으로 해석하려면, 우선 각 정책이나 사상을 세분화해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공화당이다”, “나는 특정 정치인을 좋아해서 또는 싫어해서 이 당이다”라는 식의 단순한 결론은 오히려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보다 정치 논리에 빠질 수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정치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예수님의 방법이 아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적인 이슈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경제적인 요소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국제 정치 이슈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등 정치에는 다양한 측면이 있다. 이 중 기독교 세계관과 가장 많이 충돌하는 것은 '사회적 이념'이다.

민주당이 옹호하는 ‘사회적 다양성’ 안에는, 기독교 이념과 상충하는 동성애 지지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 말씀에 반대되며 하나님이 정하신 가정의 개념과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분명히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 다양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오히려 그리스도인으로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다양성이라는 개념 아래서 역사적으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인종차별 문제 해결에도 진전이 있었다. 그렇지만 ‘좋은 건 좋은 거지’ 하고 살아갈 순 없다. 이러한 다양성 안에 동성에 포함되었을 때 분별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이 많다. 아무리 좋은 것이 99%라 해도 틀린 부분이 1% 있다면 그것을 분명히 짚고 타협하지 않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힘이다.

사실 사회적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이슈는 여러 복합적인 요소들로 얽혀 있다. 사회적 문제만 보고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외에도 이민법, 총기 소유법 등 개인과 가정에 관련된 다양한 법안들이 존재한다. 대부분 이민자로 구성된 교회 내에서 과연 “그리스도인은 민주당을 지지해선 안 된다”는 결론을 쉽게 낼 수 있을까? 총기 사고의 피해자에게 “보수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1차원적인 정치적 색을 드러내는 것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시험에 들게 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이민법이 우리 교회와 교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어떤 정당이 세계 정치에 관여하여 선교 사역에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이러한 질문과 고민은 ‘공화당이냐 민주당이냐’를 고르는 것보다, 우리가 어떤 시선과 해석으로 정치적인 사안을 바라봐야 하는지를 가이드해준다.

예를 들어, 2018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많은 한인 그리스도인들은 한국 뉴스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가졌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많은 크리스천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동성 결혼을 합법화하고, 전통적 가치들이 계속 무너지는 것을 보며 많은 크리스천들이 트럼프와 ‘정치적 거래’를 한 것이다. 트럼프는 크리스천들이 자신을 지지하면 기독교 전통 가치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알려진 펜스를 부통령으로 지명했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단순히 뉴스에 나오는 이미지나 보도로 정치적 입장을 정하는 것은 결국 언론을 통제하는 권력의 메시지에 굴복하는 셈이 된다.

모두가 정치에 대해 깊이 알고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을 보는 시선, 세상의 문제를 해석하는 기준,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정치 세력이 하나님의 가치관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반대되는지를 분별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결론이 모호할 수도 있고, 더 쉬운 결론을 추구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과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고민하는 것이 결국 우리의 시선을 더욱 분명하게 해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적인 정치 세계관이 왜 중요할까? 이 질문이 오늘의 핵심 질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인들이 ‘등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소금과 빛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논리와 사상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한다. 세상이 옳다고 정의한 것, 악하다고 정의한 것은 30년 전과 지금도 다르고, 앞으로 10년 뒤에도 많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영원하시기에, 그분의 가치와 세계관도 분명하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것은 좋은 것이고, 하나님이 죄라 하신 것은 죄다. 하나님이 정의하신 모든 것은 변하지 않는다.

가치가 무너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기준이 제시되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을 바른 길로 인도할 자는, 마치 많은 사람을 의로 인도하는 하늘의 빛나는 별과 같은 자들이다(단 12:3). 이 말씀은 다니엘서 12장에 있는 예언으로, 종말과 환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세상은 결국 마지막을 마주하게 된다. 그 끝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이 일어나며, 믿음을 지키기 가장 어려운 환란의 때가 온다. 그렇게 소망 없어 보이는 시대에도 많은 사람을 바른 길로 돌아오게 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삶을 견고히 붙들며, 많은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 올바른 성경적 정치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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