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30년간 사역을 시작하지 않으셨지만, 사역을 시작하시자마자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위의 사역에 곧바로 들어가셨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시작하고 점차 사역의 강도가 높아진 것이 아니다. 또한 처음에는 사람들의 환영을 받다가 나중에 가서야 핍박을 받으신 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사역 시작은 누가복음 4장에 기록되어 있다. 4장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이다.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누가는 예수님께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시험을 받으신 것이 아니라, 40일 내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하고 있다(2절).
예수님의 광야 시험 사건에서 눈에 띄는 점은 예수님의 분명한 입장이었다. 사탄은 빵, 즉 먹을 것을 가지고 시험했고, 세상의 권세와 영광을 제안하며 예수님을 시험했다. 세상의 사람들은 반드시 이 세 가지 중 하나에 걸려 넘어지기 쉽다. 청렴한 정치인도, 심지어 목회자도, 그리스도인들도 자신의 힘으로는 이러한 유혹을 이겨내기 어렵다. 그러나 예수님은 30세에 사역을 시작하시자마자 이러한 시험을 마주하셨고, 곧바로 승리하셨다.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대한 미련과 연약함 때문에 유혹 앞에 쉽게 무너질 수 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에 대한 미련이나 욕심이 전혀 없으셨고, 사탄의 유혹을 주저함 없이 단호히 물리치셨다.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은 바로 그 분명한 입장이었다.
놀라운 것은 성령께서 예수님을 광야로 인도하셨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 이 시험을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분명한 입장이 없다면 결국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누가 세상의 유혹과 시험에 승리할 수 있는지를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다.
그 후 예수님은 회당에서 이사야의 말씀, 곧 성령의 임재와 복음에 대한 예언을 읽으시고, 그 말씀이 듣는 순간에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신다. 이사야의 말씀을 수없이 들어온 유대인들 앞에서, 30세의 청년이 그 말씀이 자신에게서 성취되었다고 권위를 가지고 선포한 일은 큰 충격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거절당하신 사건을 기록하며, 29절에서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음을 보여준다.
이후 누가복음 4장의 나머지 부분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세를 가지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며,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신다. 사역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러한 일을 겪은 사역자가 또 있을까? 예수님의 사역 시작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예수님은 최고의 수준의 영적 전쟁과 핍박을 마주하셨음에도, 전혀 주저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뚫고 나아가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다. 4장 43절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선포하신다. “나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완벽하게 사역하지 못한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을 깊이 묵상하고, 그분을 닮아가고자 간구하며 살아간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도 승리를 허락하실 것이다. 사역 중에 유혹이 오면 많은 이들이 넘어지고, 핍박이 오면 두려움에 빠진다. 그럴 때는 지치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들 수 있다. 잠시 멈추고 쉬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이러한 연약함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결코 그런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좌절과 낙망 가운데서도 감당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세상 앞에서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식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마시는 문제, 권력에 대한 유혹, 사람들의 인정 욕구, 세상과 미래에 대한 염려, 인정받기 시작할 때 생기는 교만 등, 사탄은 우리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집요하게 건드린다.
그러나 우리의 연약함은 예수님께서 이미 담당하셨다. 예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예수님은 우리의 공급자이시며, 세상 무엇보다 귀한 사랑과 천국을 주신 분이시다. 우리가 천국을 가졌다면 이 세상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예수님께서 나의 영혼을 확정하셨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두렵겠는가? 하늘에 속한 자들은 세상의 공격 앞에서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씀으로 맞서 싸운다. 하늘의 소망과 성령의 충만을 받은 자는 고난을 십자가로 여기며, 그것을 영광으로 여긴다. 하나님을 더욱 찾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 거침없이 부르심을 따라 살아간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의인은 믿음의 사람이다.
절망하고 주저하며 무기력함에 빠져 있는 나 자신을 기다린다고 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깊이 자리 잡은 세상에 대한 미련, 핍박 앞에서 드러나는 자기 연민에서 자유할 수 있다. 오히려 나를 힘들게 했던 그러한 요소들이, 사탄이 수천 년 동안 사용해온 전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 안에 영적인 각성이 일어난다. 내 상황에 눌려 괴로워했던 나 자신을, 사탄의 무게에 짓눌려 있던 나의 모습을 직면하게 된다. 내가 힘들었던 이유가 이것이었나? 내가 이토록 눌려 있었던가?
누가복음 4장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삶의 태도를 생각해보자. 예수님은 유혹 앞에서 어떤 입장을 가지셨는가? 사람들의 핍박 앞에서는 어떻게 반응하셨는가?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무엇을 타협하지 않으셨는가? 이러한 질문을 깊이 묵상하며 기도하면, 예수님의 성품이 깨달아지고 느껴지게 된다. 예수님께서 내 마음에 임하시고, 나를 승리로 이끄신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약속이다. 우리에게 임하시기 원하셔서 십자가를 지셨고, 우리를 승리하게 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반드시 승리하게 하신다. 우리가 믿기 시작할 때 자유가 임하고, 우리의 입장은 분명해진다. "나는 하늘에 속한 자구나. 나는 예수님께 속한 자구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를 승리자로 부르셨다. 하늘에 속한 자들, 말씀을 믿는 자들,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부르심에 끝까지 순종하는 자들은 이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그런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함께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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