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20대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직장과 직업에 대한 생각이 표면적으로나 직접적으로 드러날 때가 종종 있다. 한 청년은 자신이 일하는 목적이 퇴직을 준비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다른 목적이 있는지 물었지만, 없다고 했다. 물론 가벼운 분위기에서 나눈 대화였기에 그 깊은 속내까지 알 수는 없지만, 옆에서 듣고 있던 다른 직장인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듯했다. 이런 대화 속에서 나는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직장과 일터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큰 반응은 없었다. 오히려 “일은 괴로운 것이다”,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이 더 많았다.
물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이번 달을 넘기고 올해를 마쳐도 앞으로 30년 혹은 40년을 반복해야 할 직장에 의미를 찾는 일은 버거워 보인다. 그렇지만 아직 늦지 않았을 때 더 큰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직업을 갖기 전, 어렸을 때는 생각이 달랐을 수도 있다. ‘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졌던 시절도 있었겠지만, 자라나며 부모에게서, 학교에서, 교회에서도 삶의 뚜렷한 의미와 깊이 있는 고민을 할 겨를도 없이 그저 가장 안정적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것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며 자연스럽게 일어난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내가 누릴 수 있는 것이 커지면 내가 더 행복해지는 걸까? 그렇게 미래를 위해 오늘을 버티고 이겨내며 어쩔 수 없이 살아가는 우리는 과연 행복해질 수 없는 걸까? 분명 매일의 삶 속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뚜렷한 비전과 의미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까?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직장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직장을 어떻게 바라보시기를 원하실까?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인간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보신다. 하나님은 한 사람의 인생도 헛되이 사용하지 않으신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삶이 우주의 먼지와 같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도 한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나 재난, 혹은 나보다 더 큰 세계와 우주를 마주할 때 그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이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관점에서 느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고,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써 영원한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에 모두 기록되어 있다. 특히 인간의 삶에 대한 목적은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렵지 않게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이야기를 수도 없이 들어왔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라는 말 속에서, 나는 나의 직장과 직업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더 근본적으로는,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시간을 투자하고 배우고 이뤄가는 그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나에게 무엇을 원하실까?
사도 바울의 삶을 보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그는 교육을 잘 받은 학자이자 바리새인이었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온 힘을 다했다. 이때 그의 직업과 직장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텐트를 만드는 일을 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의 서신서를 보면, 자신이 세운 교회의 후원을 통해 사역에 전념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고 본이 되기 위해 자신의 생계를 책임감 있게 이어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텐트 메이커였다는 사실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사명, 즉 부르심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의 핵심은 바로 이 부르심이다. 우리의 직업과 직장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일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모두는 사도 바울처럼 사용받을 수 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부르심을 받았다. 학벌이나 직업은 조건이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본질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리를 위한 계획과 뜻을 분명히 가지셨다. 그 계획은 구약과 신약을 통해 구체화된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의 말씀, “너를 통해 모든 족속이 복을 받으리라”는 약속은 아브라함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 이루신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믿음과 순종의 사람이었다. 이 부르심은 곧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이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오직 예수님의 업적이며,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이 복음을 인간을 통해 전하신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인간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신다.
우리는 우리 직장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갈 수 있다. 우리가 이 목적을 위해 살아갈 때, 우리는 가장 기쁘게 살아갈 수 있다. 목적 없는 삶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오늘날, 동물과 인간의 존엄성의 차이를 구분하는 것조차 논란이 될 정도로 인간의 존재 이유, 목적, 본질을 가르치거나 정의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우리 그리스도인들마저 그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면, 결국 세상의 생각과 마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물론 직업 자체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목사나 선교사로 살아간다면, 혹은 변호사이지만 인권을 위해 헌신하거나, 교사로서 교육의 기회를 얻기 어려운 학생들을 돕는다면, 직업과 사명을 직접적으로 연결할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그런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미래를 위해 적금을 들고 퇴직을 준비하는 것을 멈추라는 것이 이 이야기의 핵심은 아니다. 허락하신 재정을 아끼는 것은 좋은 생활 습관이다. 우리 부모 세대나 조부모 세대보다 훨씬 풍요로워진 오늘날, 나를 위해 주어진 모든 돈을 다 쓰는 것보다 남을 위해 사용하고 저축하는 것은 이로운 습관이라는 사실을 누가 부정할 수 있겠는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의 직장과 직업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직장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뤄갈 수 있다. 나의 정직한 양심으로, 용서하고 아픈 자를 위로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는 입술로 우리의 일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이러한 삶은 구별되고 특별한 삶이다. 세상에서는 결코 쉽게 찾을 수 없는 것을 가진 특권이다. 이러한 삶을 추구하는 자, 곧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빼앗겨도, 저축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져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의 기쁨과 부르심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다. 이러한 사람은 넘어져도 다시 일어난다. 이것이 바로 믿는 자의 축복된 삶이다. 청년 그리스도인 모두가 이러한 삶을 경험하며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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