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의 여러 가치 중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희생’을 꼽고 싶다. 성경에서 가장 큰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는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학자들에 따르면 성경에는 세 가지 사랑이 있으며, 이 중 ‘아가페’는 하나님의 사랑을 뜻한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사랑을 “오래 참는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를 논할 때 ‘희생’을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곧 십자가이며, 십자가는 바로 희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희생’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단순히 그 의미를 알고 인정하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희생’을 실천하는 삶, 곧 십자가를 지는 삶이 되어야 한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삶이기도 하다.
하지만 오늘날 세상에서 교육받은 가치관은 이와 정반대이다. 사랑과 희생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대다수는 이렇게 말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나의 행복이야.” “내가 제일 중요해.” “넌 너를 가장 사랑해야 해.” 물론 자신을 존귀하게 여기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나’에만 집중된 삶에는 ‘희생’이 설 자리가 없다.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반드시 희생이 따른다. 우리는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 작은 희생을 했던 기억이 있다. 예를 들어 선물을 준비하거나, 시간을 내거나, 그 사람이 좋아하는 음식을 사주는 것. 이런 행동은 오래전부터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희생이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내 감정을 힘들게 한다면, “나의 행복을 위해서” 이별을 선택한다. 결혼 관계 안에서도 이런 일이 흔히 일어난다. 누군가를 섬기겠다고 결단하더라도,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이 부담스럽게 느껴진다. 감정을 소모하는 일조차 피하고 싶어진다. 이는 개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시대적인 흐름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종말의 징조 중 하나로 ‘사랑이 식어지는 현상’을 말한다. 사랑이 식는다는 것은, 곧 희생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불과 30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청년들이 “사회에 기여하자”, “가족을 위해 헌신하자”, “국가를 위해 봉사하자”고 다짐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런 청년을 찾기 힘들다. 대부분은 돈을 좇고, 자신이 행복하고 편하게 사는 데에만 집중한다.
이런 사회가 건강할 리 없다. 우리는 더 많은 음식과 약, 깨끗한 물을 가지게 되었지만, 정신적인 문제와 중독, 새로운 질병이 끊임없이 생겨난다. 테러와 공포도 여전히 세계 곳곳에 존재한다. 인간은 본래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도록 창조되었다.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돌봄이 필요하고, 자립하기까지 많은 이들의 도움을 받는다. 그러나 ‘나’ 중심의 사회는 ‘나를 사랑하면 된다’고 착각하게 만들지만, 그 결과는 결핍, 가정 해체, 공동체 붕괴, 사회적 혼란이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그리스도인들조차 이런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도 희생과 헌신을 도전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물론 희생에 대한 메시지는 듣기 쉬운 말이 아니다. “축복받고 신앙생활 잘 하세요”라는 말도 많은데, 굳이 듣기 어려운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희생이라는 핵심 가치를 잃어버린 신앙은 껍데기뿐이다. 희생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소금의 맛을 낼 수 없고, 빛을 비추지도 못한 채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다.
우리는 우리의 생각과 가치관을 깊이 들여다보며, 무엇이 성경적인지, 무엇이 옳은 생각인지 분별해야 한다. 나는 섬기는 자리에 있는가, 아니면 섬김만 받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희생하기 어려워하는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이런 본질적인 질문들을 통해, 우리가 머리로는 동의한다고 생각했던 ‘희생’의 의미를 다시 정리해볼 수 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자기 부인과 십자가는 동일한 메시지이다. 왜 자기 자신을 부인해야 할까? 내가 이미 어느 정도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 더 내려놓아야 할까? 자기 부인은, 내가 포기하지 못하는 것,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내가 지닌 상처 중 가장 예민한 부분까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요구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사랑이다. 우리가 내려놓지 못하는 그 마지막 한 가지—“이것만큼은 안 됩니다”라고 말하게 되는 바로 그것이 우리의 족쇄다. 그러나 그것을 내려놓고 희생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바뀐다. 그 순간, 하나님은 더 큰 것으로 채워주신다. 내가 희생하면 가정이 바뀌고, 공동체가 바뀌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열방이 복음을 듣게 된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고통이 아닌, 축복의 시작으로 우리를 초청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희생을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우리는 본래 “내가 덜 힘든 길은 무엇일까?” “내가 어떻게 하면 더 사랑받을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내가 먼저 희생하자” “내가 좀 힘들더라도 이 친구를 도와주자”라고 생각해야 한다. 남이 먼저 되는 삶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드러내는 삶이다.
물론 이러한 삶은 우리의 본성에 반하는 것이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닐까 걱정도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한다. 십자가는 희생 그 자체이며, 그 희생은 ‘나’를 위한 희생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희생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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